건강을 결정짓는 5요소-스트레스와 환경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듯 웃기
[nbn시사경제] 조한경(기능의학 전문의)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면 병명은 잘 찾아주는데, 원인은 그냥 스트레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사들은 잘 모르겠으면 다 스트레스라고 하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고백하면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의사가 진짜 원인을 몰라서 스트레스라고 둘러댔다 하더라도 의사의 말이 맞을 확률은 매우 높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신체적 증상에 실체적 영향을 준다. 조금도 아니고 아주 많이 영향을 준다. 거의 몸을 지배하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스트레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너무 막연하게 생각한다. 왠지 그냥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할 것 같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라고만 인식하는 것이다.
가난과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실은 둘 다 공존하며 복합적인 경우가 많다. 가진 자가 가난한 자들에게 게으르고 무능해서 저런다고 비난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가난한 자가 사회구조만 탓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개인마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에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예민한 사람이 있고 둔감한 사람이 있다. 김광석의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가사처럼, “번개 소리에 기절하는 남자”도 있고, “천둥소리에 하품하는 여자”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개인차가 나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해도, 현대 사회 또한 스트레스 증가에 한몫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스트레스가 가중되도록 발전해왔다. 삶은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그만큼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더 많다는 뜻이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단순한 행복감과 같은 감정이나 심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육체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면역력을 떨어뜨려 감염이나 암 발병 위험을 높이기도 하고, 이상 콜레스테롤혈증이나 당뇨,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심장마비나 뇌졸중과 같은 급성 사망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불면증을 야기하고, 살을 찌우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않고 살을 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호르몬 분비가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스트레스는 심리적인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무리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노력을 기울여도 스트레스가 많다면 건강 상태를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정신신체증(psychosomatic)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정신신체증이란 심리적인 문제로 인해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또는 마음의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표현하지 못할 때 병이 생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간단히 예를 들면 기분 나쁜 상태에서 음식을 먹고 체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혹은 나에게 잘못한 누군가를 수년간 미워하고, 그 생각을 강박적으로 되풀이하면서 용서하지 못하면 정신신체증으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모든 정신신체증이 중병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정신신체증이 우리의 삶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스트레스 때문에 살을 못 빼고, 스트레스 때문에 콜레스테롤이 올라가고,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중년 남성들이 잠을 자다 밤사이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불과 6개월 전에 종합검진에서 심장·혈관 검사를 했고 모두 정상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심근경색의 원인이 실제로 관상동맥이 막힌 경우도 있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내 마그네슘이 소진되는데, 일반 근육보다 20배 이상 마그네슘을 필요로 하는 심장 근육이 정상적인 박동을 하지 못하고 부정맥과 심박동 정지를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마그네슘 결핍이 심장마비 위험을 증가시킨 것인데, 직접적인 원인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심장마비 환자들 중에는 얼마 전에 큰 사건을 겪었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가 많다. 그 당시에는 괜찮았는데, 사건이 지난 후 얼마 있다가 심장마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 몸속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생존하기 위해 몸이 반응하는 것을 스트레스 반응이라 하는데, 이때 자율신경에 의해 체내 호르몬 분비가 일어난다.
대표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은 코르티솔이다. 혈압의 증가, 갑상선 기능 억제, 생식 기능 및 성적 욕구 억제, 식욕 저하, 신진대사 기능 억제와 면역 기능의 변화를 유도한다.
반대로 스트레스 완화와 관련된 호르몬은 세로토닌이다. 도파민, 엔도르핀과 더불어 행복 호르몬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로토닌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의외로 우울증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세로토닌이 증가할 경우 ACTH와 코르티솔 농도가 더불어 증가하여 오히려 근심 불안이 가중된다. 심리적인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근육이 굳거나 간질 발작과 유사한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세로토닌의 어원은 세럼(Serum), 즉 혈장에서 발견된 혈관을 수축시키는 물질이라는 뜻으로, 세로토닌이 지나치면 혈관 수축으로 인한 혈압 상승이 발생할 수 있고 심한 경우 심박동 정지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바로 ‘세로토닌 증후군’이다.
스트레스는 종류도 다양하고 강도도 다르기 때문에 스트레스에도 순위가 있다. 현대인들에겐 어떤 스트레스가 가장 클까? 사람들이 어떨 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토머스 홈스(Thomas Holmes)와 리처드 라헤(Richard Rahe) 박사는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스트레스들을 43개 항목을 정하여 발표하였고, 국내에서는 홍강의 교수와 정도언 교수가 한국인의 정서와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여 스트레스지수를 개발했다. 상위 12위까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위: 자식 사망
2위: 배우자 사망
3위: 부모 사망
4위: 이혼
5위: 형제자매 사망
6위: 배우자의 외도
7위: 별거 후 재결합
8위: 부모 이혼, 재혼
9위: 별거
10위: 해고, 파면
11위: 정든 친구의 사망
12위: 결혼
놀랍게도 배우자와의 이혼이나 배우자의 외도가 죽음과도 같은 수준의 스트레스에 해당된다. 바람피우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변명이 있겠고 본인은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죽이는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배우자의 외도는 화병이 생겨 수면 장애를 유발하고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상위 12위에 있는 모든 스트레스가 인간관계와 관련된 것이고, 1위부터 6위까지는 ‘헤어지는 것’ 혹은 ‘관계의 단절’이다. 죽음도 결국은 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손상이 가는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큰 스트레스다. 관계의 단절은 사람을 죽게 만들고, 병들게 만든다.
관계라는 것이 인간의 큰 관심사이다 보니 사람들은 드라마 보기를 즐긴다. 드라마는 대부분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남녀 관계, 오해, 갈등, 출생의 비밀……. 시청자들은 남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면서 재미있어 한다. 그만큼 관계에 목말라 있고 연결되어 있기를 좋아한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서면 하루 종일 허전한 것도 어딘가에 접속되어 있길 원하는 DNA가 있는 것이고, SNS가 활성화되는 것도 다른 이들과 접속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다른 순위를 좀 더 보면,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스트레스가 10위, 돈과 관련한 문제는 10위권 밖이고, 학업과 관련한 스트레스는 30위에 머물고 있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절대적인 데이터라 할 수도 없겠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돈을 좇으며 살고 있지만, 어찌 보면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행복하길 원하는데 돈이 행복을 보장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많은 경우 돈이 해결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헛된 믿음’이라 말하고 싶다. 헛된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만 가중된다. 행복하길 원한다면 부유나 가난에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옳다. 진정한 행복은 환경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이나 취업은 답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일시적인 스트레스가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험실에서 암에 걸린 쥐로 실험한 결과, 작은 스트레스를 받은 쥐의 생존율이 더 높았다. 일시적인 스트레스가 심장박동이나 혈액순환 호르몬을 분비시켜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사냥을 하면서 쫓고 쫓기며 살아온 인류는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이겨낼 메커니즘 정도는 갖추고 있다. 다만 지나친 스트레스나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문제 된다. 이는 인류에게 익숙지 않은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음식과 영양소론 시금치나 배추 같은 녹색 채소가 있다. 녹색 채소가 도파민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행복감을 증가시키는 호르몬이다. 그중에서도 아스파라거스는 엽산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데, 엽산 부족은 우울증 위험을 증가시킨다.
오메가3가 들어 있는 연어나 견과류도 도움이 된다. 오메가3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 코르티솔과 반대 작용을 하며, 이들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을 감소시킨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도 입의 신경 말단을 자극해 뇌를 흥분시켜 엔도르핀 생성을 자극한다.
달걀에 풍부한 트립토판 아미노산은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시켜 우울증, 불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타민 C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켜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비타민 D와 마그네슘은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코르티솔의 분비를 억제한다. 그 밖에 아슈와간다와 라벤더 에센셜 오일도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을 준다.
반대로 카페인이 든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에서 카페인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우리 몸이 더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는 웃음이 명약이다. 놀라운 것은 억지웃음도 충분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타인의 행동이나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니 말이다. 웃을 일이 없어도 웃어야 하는 이유다. 운동도 스트레스 해소에 상당한 효과가 있고, 노래는 듣는 것과 부르는 것 모두 해당되며, 명상이나 기도 역시 도움이 된다.
타고난 성격이 예민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 속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나름의 방법을 통해 마음가짐을 바꾸는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 성격이라면 바꿔야 하고, 환경이라면 달관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결코 쌓아둘 성질의 것이 못 된다.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건강을 주관하기 때문에 그렇다.
jumsuk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