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n시사경제] 장현호 기자
폴란드의 작가 헨리크 솅키에비치의 장편소설(1896) 쿼바디스에서는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서 도피 중 그리스도의 환영을 보고 ‘주여,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베드로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 떠나는 길에서 이 한마디 말에서 다시 용기를 얻고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한다. 나는 늘 삶의 힘든 길에서 이 장면을 떠 올리면서 용기를 얻곤 했다.
나는 늘 길 위에서 길을 물었다.
밀양의 낙엽 쌓인 아름다운 길을 걸어며 우리가 살아온 날들에 대한 또한 살아갈 날들의 참 평화를 물어 보자
밀양하다
햇살이 잘 드는 땅
골목마다 생명이 움터
흙을 굽고, 밭을 갈고, 물길을 내었던 투박하고 거친 손들 글을 짓고, 인정을 나누며 문화를 이어간 선하고 시린 눈빛들 그들을 생각하며 길을 걷다 발에 걸린 돌부리 하나 차는 것도 저어되는 마음으로 흔적을 따라 나서다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금시당 백곡재 은행나무
금시당 백곡재 은행나무를 보러 가을 무렵 하루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사진을 담기 위해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금시당은 조선명종 때 좌부승지를 지낸 이광진 선생이 고향에 돌아와 1566년에 지은 별업이다. 임진왜란 당시 불타 사라진 별업을 5대손 이지운이 복원해 지금까지 웅장한 자태로 밀양강을 바라보며 봄에는 3백년 매화가 사람들을 부르고 가을에는 450년 은행나무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금시당 은행나무
(장현호 저)
봄여름 가을 겨울 응천 강 바라보며
제 몸집을 불린 은행잎들이
금시당 백곡재 마당에 왁자지껄 하다
그 소리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왁자지껄 450년의 기품을 함부로 밟고 있다.
금시당 은행나무 아래에 서면
누구나 철부지가 된다지만
그가 하는 말에 잠시만 귀 기울여 보라
떨구고 비우고 낮아지는 낙엽의 순간
그리운 이름들 한꺼번에 와락 달려든다.
사시사철 절경의 천년 위양지, 작고 흔한 것들이 어떻게 깊고 아름다워지는지 물어 보시라
밀양강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곳이 ‘물의 고장’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밀양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낙동강이 아래를 품고 있다. 지역민들은 “밀양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하늘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한다. 물이 늘 풍부하다는 얘기다. 물에 대한 흔적은 삼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산제수문(守山堤 水門)’은 전북 김제 벽골제·충북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한시대 3대 농경문화유적지’로 불린다. 낙동강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암반을 뚫고 개설한 수문이 현재도 하남읍 수산리에 남아있다.
지금은 매년 5월 이팝나무 꽃 절경을 선사하는 양양지(陽良池)는 신라시대 때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한 저수지다.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 담겨 ‘위양지(位良池)’라고도 불린다.
전국각지에서 가을의 아름다운 위양지의 얼굴을 보러 찾아 들고 있다. 조선시대 부사 이유달이 양민을 위한 농수지로 위양지를 만들고 다섯개의 인공섬을 호수 곳곳에 놓고 완재정 안에서 차경하여 풍류에 취했으리라
시대가 흘러 지금은 원시림의 신비감을 즐기러 21세기 풍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최고의 힐링 명소로 각광 받고 있어니 밀양관광의 대명사가 되었다.
호수 한바퀴를 산책하면 아름답지 않은 각도가 없다
연인과 팔짱끼고 거닐어 보시라 그대는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속에 주인공이 되어 있으리라
낙주재와 명례성당, 깊은 사색과 묵상의 공간
세상도리가 무너진 시대를 만났음이여
어찌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리오
나의 마음은 초조하고 바쁜데
나의 발걸음은 더디고 더디구나
말고삐 잡고 방황함이여
정든 서울을 떠나 어디로 갈거나
낙동강의 끝없는 흐름을 굽어봄이여
발도 씻고 낚시질도 할 수 있겠네
이미 분수를 알아 편안하고
기틀을 깨달음이여
갈대를 물고 나는 물새들을 벗하리라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는 효령대군의 8세손 낙주 이번이 권세를 멀리하고 은둔하여 여생을 보낸 낙주재가 있다. 낙주재에는 이번이 쓴 시비가 있는데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세상살이의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명문이 또 옷깃을 여미게 한다
나그네들이여! 낙주재에 올라 낙동강의 품에 안겨보라! 삶에서 잠시 쉬어감이 주는 참 평화와 풀 한포기의 경이로움에 잠길 것이거늘…
김해 가동리와 마주하는 낙동강 명례나루 위쪽에 명례성지와 가까운 곳이다
명례공소는 경남 최초의 성당이다
소금장수였던 신말구는 밀양지역 최초의 천주교 신자였다
지금은 승효상 건축가의 설계로 지은 소박한 새 성전과 오래된 공소가 공존하는 곳이다
매번 갈 때마다 신 마르코의 순교신앙은 엄숙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초대 신앙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 명례성지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 소금장수로 숨어살다 순교한 밀양최초의 천주교 신자 신석복 마르꼬 복자의 생가터에 들어서 있는 천주교 성지 명례성당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하여 주변 풍경을 해치지 않은 밀양최고의 절제된 미를 예술적으로 완성한 건축물이다.
밀양 아리랑 캠핑장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 강가의 나지막한 언덕위에 옛 성당이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천주교회에서는 영적인 고향으로 오토캠핑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명례성당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밀양 아리랑 캠핑장에서 명례성지 안내판을 따라 이동하면 성벽같은 천주교의 성지인 명례성당과 확트인 낙동강 풍경과 봉화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명례성당은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의 출생지 바로 옆에 세워저 있는데 경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천주교회 (경남에서 최초로 건립된 성당 영남에선 네번째)
낙동강 강변 둘레길 하남읍 들판과 낙동강의 아름다운 가 을을 만끽할 수 있는 빼어난 드라이버길이다.
하남평야의 풍요로운 가을들판 낙동강 둑길-명례성당-낙주재-주남저수지로 가는 길은 자랑하고 싶은 가을낭만의 드라이버 길이다.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선비의 고장 밀양은 저항의 도시이기도 하다 삼별초의 난, 사명대사의 호국충정, 김원봉 장군의 독립운동의 성지로 알려진 고장 밀양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는 용서와 은총의 땅 비밀스러운 빛의 의미와 햇볕이 빽빽한 고장이라는 수식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고장이다. 오래된 서원과 아름다운 자연풍광, 얼키고 설키며 도시를 휘감아 도는 밀양강의 물줄기는 응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서로 얼싸안고 돌아가는 강줄기는 밀양 아리랑 노래처럼 힘차고 경쾌한 리듬처럼 밀양사람들의 기질이 드러난다.
밀양을 걸어며 밀양에서 길을 묻는다. 그대 늘 밀양처럼 밝고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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