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n시사경제] 김형만 기자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이후 맞이하는 봄,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어디로 가야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 나들이객들을 위해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으로 불리는 강화도 여행을 추천한다.
강화도는 역사의 현장이자 관광 명소이다. 섬 전체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근리 지석묘를 비롯해 천년사찰인 전등사와 적석사, 석모도 보문사가 있다. 또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50여 개의 돈대와 고려궁지, 성공회 강화성당, 조양방직, 소창체험관, 강화전쟁박물관, 강화역사관, 평화전망대, 교동도 화개전망대 등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어 모처럼 떠나는 여행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여행의 시작은 딱히 정할 필요가 없다. 발 딛는 그곳이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출발지 이다. nbn시사경제에서는 강화군의 중심지 강화읍을 중심으로 여행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 여행지로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궁지 ▶북문 벚꽃길▶조양방직’을 소개한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고요한(Charies Jone Corfe)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이다. 당시 건축 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했으며,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은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의 의미로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10칸)중층 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성당 1동, 사택 1동, 내삼문 1동, 외삼문 1동이 있다. 얼핏 보면 불교사찰처럼 보이기도 하는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뜰안에는 사제(司祭)들의 묘비가 서 있다.
지금도 강화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참고 할 것은 평일에는 성당내부가 공개가 되지 않지만 미사가 있는날 맞춰 가면 내부도 볼 수 있다.
강화성당에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강화 고려궁지는 1964년 사적 제133호 ‘고려궁지“로 지정되었고 1977년 복원 정비되어 현재는 유수부 동헌, 이방청, 강화동종과 2003년 복원한 외규장각이 있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최우(崔瑀)가 2천명의 군사를 동원해 이곳에 왕궁을 건립했다. 규모는 작으나 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의 궁궐과 같게 하고 이름도 송악이라 했다. 이후 대몽항쟁기 39년간 고려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몽골과의 화친 후 고려왕이 개성으로 환도(1270)하게 되자 몽골의 요구에 다라 궁궐 건물과 성곽을 모두 파괴했다.
남아있는 강화유수부 동헌은 유적건조물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관아의 하나로 강화지방의 중심업무를 보던 동헌이다. 건물 구조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단층집으로 되어있다. 현재 건물은 여러 차례 보수를 마친 상태다.
강화동종은 강화유수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그 후 1711(숙종 37)유수 민진원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것이다. 높이 198cm, 입지름 138cm로 조선후기 동종으로는 큰 규모이다. 동종은 성문(城門)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의 동종은 1999년 10월 종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타종하지 못하게 되자 강화동종을 복재해 설치하고, 원래의 종은 강화역사관으로 옮겨 보관전시하고 있다.
강화유수부 이방청은 강화유수부의 행정 실무자들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1654년(효종 5)유수 정세규가 세웠고, 1783(정조7)유수 김노진이 내부를 수리했다. 이후 등기소로 사용되다가 1972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구조는 ‘ㄷ’ 자형 단층기와집으로 방이 8칸, 마루가 12칸, 부엌이 1칸으로 모두 21칸 규모다.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 때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2003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강화산성 북문 벚꽃길은 고려궁지를 둘러쌓고 있다. 이 북문은 고려 고종 19년(1232)에 강화로 천도한 뒤 대몽항쟁을 위해 축조한 내성(당시 토성)에 연결되었던 문이다. 내성은 개경환도와 동시에 헐리고 조선 초기에 토성으로 개축하였으나, 인조 15년(1637) 병자호란 때 대부분이 파괴되었던 것을 효종 3년(1652)에 일부를 개축했다.
‘북문 벚꽃길’은 고려궁지에서 강화산성 북문에 이르는 800미터 구간에 수령 50년이 넘는 아름드리 벚꽃이 터널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이 길은 젊은 연인들을 비롯해 가족단위 관광객이 찾는 강화군의 숨은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강화읍 원도심 관광코스와 연결된다. 조양방직, 소창체험관, 왕의 길 등 원도심 골목을 보도로 이동하며 고려시대부터 1960~70년대 산업화기에 이르는 강화의 숨겨진 역사, 문화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조양방직은 일본 주택 건축양식에 한옥의 미를 가미한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공장이다. 일제강점기 때 강화 갑부였던 홍재묵·홍재용 형제가 1933년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설립했다고 전해진다.
설립이후 조양방직은 강화도의 부흥을 견인하다 방직산업 쇠퇴로 1958년 폐업했다. 이후 촬영장 등으로 활용되다 1990년대 문을 닫고 오래도록 방치돼 있던 것을 이용철 대표가 핫플레이스로 변화시켰다. 그는 방직공장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레트로 감성이 풍부한 카페와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내부는 당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각종 작업도구에 아이디어가 붙여져 카페 실내·외 곳곳에 사람들의 추억을 담는 훌륭한 포토존으로 변신했다.
nbn 시사경제, nbnb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