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n시사경제] 이원영 기자
“이반 일리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들이 위험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일리치는 제도화된 현대의학이 자체의 의식과 교리를 갖춘 새로운 종교가 되었고 의사들은 새로운 사제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현대의학이 건강을 해치고 있다, 의학이 건강을 위해 조직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제도로 조직되었고 치료한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아프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현대의학의 민낯을 사정없이 까발리는 신간 ‘병든 의료’(Can Medicine Be Cured?)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는 아일랜드의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셰이머스 오마호니로 포장 속에 숨겨진 현대의학의 자화상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이반 일리치(1926~2002)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회비평가로 그의 책 <의료의 한계>에서 “의료제도가 건강에 주요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현대의학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선구자다.
<병든 의료>는 현대 사회에서 의료에 대한 의존과 불신이 함께 커졌다고 진단했다.
"오늘날 현대 의료가 병을 치료하기보다는 오히려 병을 만들어내고 있고, 의학이 인간 수명을 연장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 수명이 연장되었기 때문에 의학이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의료가 지금처럼 중요해진 때도 없지만, 또 의사와 병원이 지금처럼 불신을 받는 때도 없다. 조금만 신체적 이상을 느끼면 병원을 찾는 ‘의료 과잉’의 시대임에도 환자와 의사 모두 만족스러운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저자 오마호니는 이 책에서 “치료받아야 할 것은 환자가 아니라 현대 의료 자체”라고 말한다. 영국과 아일랜드 의료계에서 존경받는 의사로서 <요즘 우리가 죽는 방식>이라는 책으로 ‘올해의 의학도서상’을 받기도 한 저자는, 수십 년 간의 임상경험에서 느낀 현대 의료의 문제들을 이 책에서 낱낱이 고발한다.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내는 데만 몰두한 의료계, 예방을 명목으로 의미 없는 약물을 강요하는 의산복합체, 치료와는 관계없이 연구 실적만 중시하는 과학주의, 그리고 환자의 권리를 내세워 의료라는 공공재를 소비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소비자주의야말로 치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책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과잉 처방은 무책임한 의사와 의존적인 환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다.
“의사들은 과도한 처방으로 종종 비난을 받지만, 의사 진찰을 받으면 반드시 처방전이 발행될 것이라는 환자들의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사들도 이런 행위가 길고 힘든 상담을 결론짓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의사가 말했듯이 “이제 그만 꺼지시죠”를 공손하게 말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런 처방이 흔히 내려지는 것은 의사들이 심리적 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시간이나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요양원에 있는 환자들이 20개씩이나 되는 처방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흔히 보곤 한다.”
현대의학은 흔히 인간 수명의 연장이 그들의 몫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뒤보는 말하기를, 공중보건과 인간 수명의 획기적 향상은 의학 연구의 황금시대 훨씬 전부터 있었던 일이고 위생과 영양의 개선을 통해 달성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학이 어떻게 이런 공로를 가로채게 되었는지를 위트 있는 말로 표현했다. ‘조수가 해변에서 밀려날 때는 양동이로 물을 퍼내서 바닷물을 비울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저자는 무조건 수명을 늘리는 것보다는 삶의 질이 훨씬 중요하며 수명연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현대의학은 삶의 질을 많이 앗아가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오늘날 의학의 ‘진보’는 자립성 상실과 만성 질환에 시달릴 때까지 우리를 충분히 오래 살게 해주겠다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미심쩍은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우리는 늙어서 노쇠할 때까지 생존하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더 고귀한 포부를 가져야 한다. 의료는 교육의 기회를 빼앗고, 적당히 살아갈 만한 집을 빼앗고,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빼앗고, 좋은 대중교통을 빼앗아가는 악당이다. 의료에 대한 지출을 계속 늘린다고 해서 우리에게 더 큰 위안과 기쁨이 오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약물 위주의 현대의학이 얼마나 초라한 성적표를 내고 있는지도 지적했다. 즉 신약 개발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만 치료효과는 미미하고 그 약의 부작용과 비용을 환자들이 고스란히 부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암의 90%에 해당하는 유방암, 폐암, 대장암, 전립선암 등에서 항암제는 생존기간을 겨우 3개월 연장시켰을 뿐이다. 최근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도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승인한 48개의 신약을 조사했더니 이 또한 생존기간 증가가 2.1개월에 불과했다.”
저자는 제약회사와 의료계의 단단한 카르텔을 ‘의산 복합체’로 규정했다.
“의산복합체가 너무 강대해진 나머지 의료는 이제 이반 일리치가 말한 티핑포인트를 지나서 사람들에게 도움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의학에서 어떤 새로운 발전이나 치료법이나 패러다임이 나왔다고 하면 먼저 두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는 퀴 보노(Cui bono), 누구에게 이익인가? 둘째는 그것 때문에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인가?”
저자는 인간의 행동과 감정이 정상적으로 변이하게 되는 것도 현대의학은 약물 치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유사 종교’가 되어버린 의료의 종사자인 의사는 ‘환자들이 이 종교를 배교하고 포기하도록 친절하게 격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종교화’ 되어버린 현대의료의 울타리에서 의사들도, 환자들도 깨어 나와야 한다는 주문이다.
저자는 현대 의료가 질병의 정복을 장담하기보다는 ‘연민’을 회복하고, 불가능한 완치보다는 고통 경감과 완화치료에 노력하며, 수명 연장보다는 호스피스 돌봄에 가치를 두는 참된 인간적 의료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거대 산업이 된 현대 의료에 대한 고발장이자,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건네는 진심어린 치료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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