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n시사경제] 장석용(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이현지 한국무용가](/news/photo/202502/39449_43123_044.jpg)
구정을 닷새 앞둔 그해 겨울, 이현지(李賢智, LEE HYUNJI)는 포근한 날씨를 타고 2남 1녀 중 막내로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이현지는 청원초, 은혜의 동산 기독교학교, 계원예고, 경희대에서 학사·석사·공연예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무용과의 조우는 여덟 살 무렵이다.
딸을 가진 여느 엄마들의 로망처럼 현지의 모친 또한 현지를 무용학원에 보냈다. 현지는 피아노, 미술, 다른 예체능 교습과 달리 유독 무용에 관심을 보이고 집중했다.
현지는 발레로 무용을 시작했다. 어릴 적 무용 선생은 현지는 성인무용반 어른들과 둘러앉아 떡도 잘 먹고 진도북춤과 같은 민속춤을 아이 같지 않게 잘 추었다고 회상한다.
현지의 춤 정서로 미루어 전통미가 가득한 한국무용이 적합했다. 현지는 본디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지만, 예쁜 의상을 입고 무대 분장을 거쳐 박수받는 것을 좋아했다. 이현지는 어려서부터 무대에 서는 무용수라는 목표를 가지고 꿈을 가져왔고 지금까지 분주하게 달려왔다.
이현지는 성실하고 끈기가 있는 무용수이다. 일단 무엇에 몰두하면 그것이 이루어져야 직성이 풀린다. 이현지는 유소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는 김정아 선생(화성시 향토무형문화재 1호 이동안류 승무 보유자), 고교 시절에는 김호은 선생(계원예고 한국무용 전임), 현재는 경희대 무용학부장인 안병주 교수(평안남도 무형유산 김백봉부채춤 보유자)로부터 이론과 실기에 걸친 조련을 받으면서 김백봉 선생의 주옥같은 작품에 특화되어 가며 춤 전승해 나가고 있다.
그녀는 학부 시절, 침체하는 듯한 춤 실력에 절망할 때도 있었으나 스승과 가족의 아낌없는 사랑과 조언이 성장의 원동력과 발판이 되었다. 그녀는 콩쿠르와 입시 훈련을 받아 수동적이었던 청소년기를 지나 자립하고 알아서 해야 했던 학부 시절은 소극적으로 변한 짧은 인생의 암흑기였다.
4학년에 들어서 만난 장구 기반의 「타의예Ⅱ」는 자신 있게 열정적으로 임한 탓에 솔로로 발탁되었다. 장구에의 인연은 ‘김백봉장구춤’ 향기를 안병주 교수께 사사 받게 했다.
이현지는 시끄럽고 요란한 도시보다는 시골, 새것보다는 옛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춤 안에 내재한 감정선을 잘 찾아 스스로 작품에 빠져들 수 있는 에너지를 소지한 예술가이다.
![타의 예](/news/photo/202502/39449_43124_113.jpg)
이현지는 또래들과 달리 한국무용의 진정한 미와 기반은 느릿한 전통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통을 사랑한다. 그녀는 작품에 완벽성을 기해야 하는 무대는 변화무쌍한 상황이 존재하며 무대의 소중함, 냉정함, 자신이 몸으로 부닥치며 직면해야 하는 공간임을 잘 알고 있다.
이현지는 김백봉 선생의 춤 가운데 「김백봉부채춤」, 「김백봉장구춤」, 「타의예Ⅱ」에 집중한다. 「김백봉부채춤」은 그녀의 최애작이다. 그녀는 고교 시절에 ‘김백봉부채춤’ 강습회를 접했고, 대학 입학 이후, 안병주 교수를 만나 심도 있게 배우게 되면서 군무 구성원이 되었다.
어느날 영상으로 마주한 김백봉 선생의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눈빛과 연기력의 젊은 시절의 부채춤은 그녀를 더욱 매료시켰다. 그녀는 작품에 더욱 몰입했고, ‘김백봉부채춤’의 전승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김백봉부채춤」 : 김백봉 창작(1954)의 춤은 평안남도의 역사와 문화가 기반이다. 근·현대화 과정에서 성장하고 한국적 정서의 독특한 기교와 미학이 돋보인다. 두 손의 부채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음양의 조화를 조율해 내면서 다양한 춤사위에 춤의 중후함, 유연성, 탄력성이 담겨 있다.
반주음악으로 쓰는 굿거리와 자진모리장단의 흥겹고 경쾌한 리듬이 춤사위를 이룬다. 이 춤은 평안남도 무형유산 제3호로 등재되면서 ‘김백봉부채춤’으로 명명되었다.
부채 사위는 자연의 이치를 근본으로 한다. ‘김백봉부채춤’은 멕시코 올림픽(1968) 문화사절단이 되었다. 부채춤의 무궁화는 한국의 국화를 상징한다. 이 춤은 응집된 겨레의 힘이 전 세계로 확산하여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민족적 서사를 담고 있다.
이현지는 김백봉의 춤 전통을 이어가면서 자기 몸에 축적된 응축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하여 무궁화가 상징하는 모든 희망적인 염원을 자기만의 색깔로 채색한다. 현재 보유자 안병주에 의해 후학에게 전승되고 있다.
「김백봉장구춤」 : 한국만이 자랑하는 타악기의 하나인 장구는 흥의 원천이요, 멋의 상징이다. 서너 작품에 달하는 김백봉의 장구춤마다 특유의 매력과 멋이 있다. 최승희 원작, 김백봉 재안무(1995년)의 장구춤, 기생은 장구를 비스듬히 메고 치고 걸으며, 노래하며 흥겹게 춤추는 자세는 매력을 뿜어낸다.
이현지는 장구의 몸통과 옷고름의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장구와 자신이 완전한 일체를 이룬다. 장구는 이질을 인정하고 조화를 존중한다. 푸른 치마와 빨간 장고의 몸통, 땋아 올린 까만 머리와 하얀 두드림 판의 색감 등이 장고 미학에 스며들어 춤 기교의 상급을 이끈다.
「타의예Ⅱ」 : 김백봉의 작품 <타의예>의 예술적 정서를 기반으로 안병주 교수가 새롭게 재안무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신무용의 현재적 해석과 창작무용을 통한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원작의 여성적인 민요 가락을 빼고 설장고 가락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타의예Ⅱ」는 이정범류 농악 가락과 김백봉 특유의 가락을 접목하여 역동성과 생동감 넘치는 요소들만으로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매력적인 움직임과 함께 장구의 멋진 가락을 조화롭게 구성하며 한국적 정서가 깊게 묻어난다. 이현지는 김백봉의 신무용 해석에 집중하며 창작무용의 묘미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이현지는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김백봉 춤의 아리랑」(2014.11.12일)을 보며 김백봉의 춤 세계를 제대로 영접했다. 이현지는 이제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은 그런 웅장했던 무대의 주인공이다.
김백봉의 작품들은 열정과 화려함 속에 내재한 우아함, 서사가 가득 담겨 있어 이현지의 여린 마음에 불씨를 지핀 결과였다. 이현지는 제2회 CAD코리아 댄스 그랑프리 최우수상, 제9회 우리춤 국제 무용경연대회 대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현지는 아버지 이만종, 어머니 나명주, 안병주 교수를 비롯한 스승들이 애지중지하며 성장시킨 한국무용계의 빛나는 보석이다.
이현지는 묵직하게 불같은 열정으로 춤을 사랑하는 한국춤 무용수이다. 그녀는 춤이음무용단 정단원·평안남도 무형유산 김백봉부채춤 이수자로서 내공을 쌓아가며 한국무용사에 내공의 기록을 등재하고 있다.
이제 그녀는 자기 경험과 고민을 후배들과 공유하며 경희대 무용학부에 출강하고 있다. 앞으로 그녀는 시간의 움직임에 따라 고귀해지며, 시린 학습 시대의 고귀한 이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이현지만의 색을 담아 다채롭고 특색있는 한국 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겨울을 뚫고 봄을 맞이한 것처럼 온 마음 다해 순탄한 춤 길을 걸어가길 기원한다.
이현지 한국무용가
김백봉 부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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